대통령도 쉬어가던 청주 청남대… 초록 여유에 안기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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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2021-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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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쉼터 된 대통령 공식별장/화합의 길·솔바람 길 다양한 산책로 다양/음악분수 연못엔 초록 연잎 가득/시원한 대청호 즐기며 힐링/실향민 아픔 담긴 문의문화재단지 초가 고향집 온 듯 푸근
[청남대 헬기장 잔디광장 봉황 조각품]
대통령. 세상에 이토록 외롭고 고독한 단어가 또 있을까. 난다 긴다 하는 참모들이 있다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뇌에 찬 결단은 늘 혼자 져야 하는 십자가. 고민이 깊어질 때마다 그들이 찾은 곳이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 대통령 공식별장 ‘청남대’다. 역대 대통령들은 깊은 사유의 시간을 지나는 ‘청담대 구상’을 통해 국정운영의 중대한 고비 때마다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이는 역사를 바꿔왔다. 청남대의 주인은 이제 여행자들이다. 대청호의 빼어난 풍광을 즐기며 천천히 걷다 보니 번잡하던 머릿속은 어느새 차분해지며 지친 삶을 위로받는다.
[김영삼 대통령 청남대 구상]
#대통령도 쉬어가던 청남대서 힐링해볼까
충북 청주시 문의면 청남대 만남의광장 휴게소와 괴곡삼거리를 지난 승용차가 가로수길로 불리는 청남대길로 접어들자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대청호반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 양옆으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 아름드리나무들이 빽빽하다. 청남대로 이어주는 유일한 가로수길에는 백합나무(튤립나무) 430여그루가 심어져 봄에 백합모양의 녹황색 꽃이 핀다. 가을에는 잎이 노랗게 단풍이 든다니 더욱 근사한 풍경을 만날 수 있겠다. 겨울에도 커다란 꽃받침에 눈꽃이 탐스럽게 피어 영화속 수채화 세상으로 변하는 사계절 아름다운 길이다.
청남대 홈페이지에서 미리 승용차 입장예약을 했기에 게이트에서 스마트폰으로 방문자 콜만 남긴 뒤 곧바로 주차장까지 달린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청남대에서 12㎞가량 떨어진 문의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어야 하기에 다소 번거로우니 사전예약이 필수다. 1983년부터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이용된 청남대는 한때 국가 1급 경호시설이었다. 4중의 경계철책으로 꽁꽁 감춰 베일에 싸여 있다가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 때 충북도에 관리권이 이양되면서 30년 만에 일반인의 발길이 닿게 됐다.
[다양한 청남대 산책로]
[별관 역대 대통령 사진]
대통령 별장인만큼 관리가 아주 잘돼 있다. 총면적은 184만4000㎡로 아주 광활하기에 충분히 시간을 두고 둘러보는 것이 좋다. 산책로가 다양하다. 주차장에서 왼쪽 행복의 계단을 거쳐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인 통일의 길은 출렁다리를 지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동상이 있는 초가정까지 2.5㎞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화합의 길, 민주화의 길, 나라사랑 길은 각 1㎞로 20분 정도 소요된다. 대통령기념관 별관에서 이승만 대통령 동상까지 대청호 풍경을 즐기며 걷는 솔바람 길은 2㎞로 40분, 본관에서 오각정을 지나 무장애나눔길로 편안하게 대청호를 즐기며 윤보선 대통령 동상까지 이어지는 오각정길은 1.5㎞로 30분 거리다. 주차장에서 산림욕장 방면으로 이어지는 호반길은 3.1㎞로 넉넉하게 1시간30분은 잡아야 한다.
[별관 대통령 휘호]
[별관 대통령 정상외교 선물]
1시간 정도 중요 포인트만 둘러보고 싶다면 음악분수까지만 다녀와도 충분하다. 주차장을 지나면 만나는 대통령기념관 별관에서 여행이 시작된다. 역대 대통령의 초상과 휘호, 정상외교 때 받은 선물 1000여점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대통령 집무실은 포토존. 요즘은 미래의 꿈이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을 테지만, 봉황장식이 새겨진 책상에 대통령처럼 앉아 전화기를 든 포즈로 추억 한 장 남기도록. 나중에 보면 유치해도 아주 재미있다.
[청남대 정문]
[반송]
청남대 이관을 기념해 문의면 32개 마을 주민 수와 같은 5800개 돌로 쌓은 돌탑을 지나면 청남대 글자와 봉황이 크게 새겨진 정문이 등장한다. 길 양쪽에 기품 있는 모습으로 도열해 여행자를 반기는 나무는 80여년 수령의 반송으로 32그루가 심어져 있다. 길 오른쪽에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은 헬기장으로 쓰이던 곳으로, 한가운데 자리 잡은 거대한 봉황 모양의 정크아트 작품이 여기가 청남대라고 알린다. 헬기장 끝은 본관. 대통령 가족 전용공간, 회의실, 접견실, 거실, 손님실로 꾸며져 대통령들의 휴가생활을 엿볼 수 있다.
[음악분수 연못]
헬기장과 본관 샛길을 따라 박정희 대통령 동상 방면으로 길을 잡으며 가장 인기 높은 음악분수를 만난다. 양어장과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던 연못에는 초록 연잎이 가득하고 시원한 분수가 뿜어져 나오며 한낮의 열기를 누그러뜨린다. 연못 위로 데크를 만들어 놓아 아름다운 풍경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연못 건너편 언덕에 청와대 본관 건물을 60%로 축소한 대통령기념관이 보인다. 연못 옆 메타세쿼이아길에서도 근사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나무들이 사열하듯 정확하게 줄을 맞춰 서 있는 모습이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1984년 심어진 메타세쿼이아 100여그루가 쉬어가기 좋은 그늘을 만들어 깊은 산속에 온 듯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메타세쿼이아 길]
[민주화의 길 대청호 풍경]
다시 돌탑으로 돌아 나와 오른쪽 어울림마당쪽으로 내려가면 골프장으로 쓰이던 넓은 잔디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행정수반 8명의 동상이 모셔져 있다. 클럽하우스이던 그늘집 앞 대청호 풍경이 낭만적이며 민주화의 길을 따라 초가정까지 갈 수 있다. 시간이 있다면 통일의 길로 이어지는 청남대 전망대도 올라보시길. ‘청남대 행복의 계단’으로 불리는 나무 계단 645개를 오르면 청남대 전경과 아름다운 대청호가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문의문화재단지 초가]
[문의문화재단지 전경]
#문의문화재단지 올라 수몰민 향수를 마주하다.
대청호는 호수 위로 나무가 빽빽한 해발고도 200∼300m 산들이 펼쳐지는 빼어난 풍경 덕분에 드라이브 코스로 인기가 높다. 이런 모습 뒤에는 수몰민의 아픔과 향수가 어려 있다. 1975년부터 5년 동안 조성된 대청호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인공호수로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옥천군·보은군의 마을들이 한꺼번에 물에 잠겼다. 양성산 언덕의 문의문화재단지는 수몰 위기에 처한 마을의 문화재들을 옮겨와 조성한 곳으로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선정한 강소형 잠재관광지다. 청남대와 가까워 함께 묶어서 여행하기 좋다.
[조동마을탑]
[초가 대문]
청주에서 대청댐 방향으로 32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언덕 위에 조성된 마을이 보인다. 청남대 돌탑처럼 이곳에서도 ‘고향을 그리는 마음 조동마을탑’이라 적힌 커다란 돌탑이 여행자를 맞는다. 사연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읽다 보니 애잔한 슬픔이 밀려온다. 수몰 당시 60여가구가 살던 조동마을은 청주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 종점이 있던 곳으로, 동네 한가운데 커다란 ‘탱자나무 과수원’이 있어 여행자들에게도 쉽게 기억되는 마을이었다. 마을에 정착한 이유야 모두 다르지만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단 하나. 다시 밟을 수 없는 고향 마을의 그리움을 달래려 살던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 탑을 세웠단다.
[초가와 배롱나무 꽃]
[수몰지역 비석]
가파른 언덕을 올라 해설사의 집을 지나면 낭성면 관정리 고가를 시작으로 다양한 옛집들이 등장한다. 이곳은 신방호씨가 살던 집으로 원래 모습 그대로 1994년 이전복원했으며 전형적인 중부지방의 초가다. 흙벽으로 지은 아담한 ‘一’형 초가와 장독대, 마당으로 이뤄진 풍경이 어린시절 외가댁에 온 듯 정겹다. 툇마루에 앉으니 초가의 열린 대문으로 운치 있는 소나무와 대청호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근사하다.
[양반가옥]
[양반가옥]
초가를 나서면 다양한 고인돌이 전시돼 있다. 미원면 수산리, 문의면 가호리, 내수면 학평리에서 옮겨온 고인돌이다. 중부지장 양반이 살던 옛 가옥도 만난다. 문벌이 높은 사대부 가옥의 건축구조로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꾸며졌고 안채 뒤쪽에 가묘도 조성됐다. 어른 얼굴만한 다양한 색의 돌들이 가지런하게 박힌 흰 담벼락이 인상적이다. 정갈하게 잘 정돈된 한옥으로 툇마루에 앉아 쉬며 수다 떠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중부지방에선 보기 드문 돌너와집(부용민가)도 만난다. 돌을 판판하게 기와처럼 만들어 지붕을 이은 모습이 독특하다. 저자거리, 주막집, 대장간도 고증을 거쳐 조성됐다.
[문산관]
[문의문화재단지 대청호 전경]
언덕 꼭대기 건물은 문의현의 관아 객사 건물이던 문산관. 초하루와 보름날에 임금이 계신 대궐을 향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다. 문산관 앞에 벤치에 앉는다. 배롱나무꽃이 활짝 핀 고즈넉한 문화재단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푸른 하늘을 그대로 담는 대청호가 아름답게 펼쳐지니 막힌 가슴도 시원하게 열린다.
[출처 : ⓒ 세계일보 & Segye.com]